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도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사과”였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는지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일본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사용해 욌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이상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볍게 배려의 의미로 사용한 말인데, 한국 사람들은 예상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사과보다 먼저 상황을 설명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같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어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담겨 있는 의미와 감정의 무게가 꽤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한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경험들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사과 문화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왜 먼저 사과할까
저는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제가 죄송하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그 차이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저보다 열 살 정도 많은 분과 친해져 연락을 주고받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카톡 답장을 늦게 확인하게 되었고, 저는 별생각 없이 평소 습관대로
“죄송해요. 문자를 지금 봤어요.”
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조금 놀란 듯
“무슨 죄송까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오히려 조금 당황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꼭 잘못한 상황이 아니어도 사과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더라도 상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고, 누군가 선물을 주거나 도움을 주었을 때도
“너무 고마워요. 죄송해요.”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조금 낯설게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실제 잘못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감사한 상황에서까지 사과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일본 사람들이 사과를 많이 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니, 익숙했던 문화가 사실은 일본 특유의 문화였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어도 한국과 일본에서 느껴지는 의미와 무게는 꽤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해명부터 하게 될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사람들의 사과 방식이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오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습니다. 결국 영화는 먼저 시작해 버렸고 저는 혼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친구가 급하게 들어왔고, 저는 당연히 먼저 “미안해”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첫마디는
“내가 늦었네?”
였습니다.
순간 저는 속으로
‘그건 나도 아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곧바로 왜 늦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나오려는데 고양이가 토를 해서 치우느라 늦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최대한 뛰어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저는 솔직히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유를 듣고 싶다고 했나?’
‘나였으면 일단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먼저 말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속으로는
‘정말 계속 뛰어온 건지, 마지막에만 뛰어온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감각에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한참 설명을 한 뒤 마지막에
“어쨌든 미안해.”
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조금 흥미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한국에서는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다른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영화 약속 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답장이 늦었을 때도, 작은 실수를 했을 때도 한국 사람들은 먼저
“오늘 너무 바빴어.”
“아까 이런 일이 있었어.”
처럼 내가 왜 그랬는지 상황 설명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먼저 말하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익숙했던 방식대로 먼저 사과를 하고, 그다음에 이유를 설명하는 흐름이 더 성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설명들이 변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할수록 그것도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먼저 이해받고 싶어 하는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과와 해명 속에 담긴 한국과 일본의 차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한동안 한국 사람들은 왜 먼저 사과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사과를 안 한다” 기 보다 사과를 바라보는 감각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사과는 꼭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상대를 기다리게 했을 때, 신경 쓰게 했을 때, 시간을 쓰게 했을 때처럼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었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사과의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사과가 책임을 인정하는 말이라기보다, 관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죄송하다”는 말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틀린 사람이 되거나, 책임을 인정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먼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저에게 조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 역시 상대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 상황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설명부터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반대로 한국 사람들도 제가 먼저 사과부터 하는 모습을 조금 어색하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가볍게 배려의 의미로 사용한 말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예상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경쟁이 강하고 빠르게 성장해 온 사회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손해를 보거나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개인의 감정보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상대의 불편함을 먼저 줄이기 위해 사과를 하고,
한국은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먼저 이해받기 위해 설명을 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기보다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계의 방식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의 설명이 단순한 변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이제는 그 안에도 상대와 감정을 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일본의 사과 역시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말만은 아니었습니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과 배려가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상대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며 사과를 하고, 한국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고 싶어 하며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어쩌면 두 문화 모두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해 보니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 한마디에도 각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