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병원에서 녹내장 검사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차를 운전해서 다니지만, 검사 후에는 운전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오랜만에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버스 안에서 저는 한국의 여러 모습을 한꺼번에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빠르고, 시끄럽고,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의 탄 버스는 정말 빨랐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부터 분위기가 조금 강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차들이 서 있어서 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못하자, 기사님은 답답한 듯 큰소리로 화를 내셨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했던 것은 승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승객들도 기사님 편을 들며 같이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일본에서라면 버스 안이 조용해지고, 모두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버스 안의 사람들이 같은 상황을 함께 겪고 함께 반응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정말 빨랐습니다.
서 있는 것이 힘들 정도로 흔들렸고, 몸에 힘을 주고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일본의 버스는 대체로 천천히 달리고, 출발과 정차도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한국 버스는 훨씬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게 느껴졌지만, 주변 승객들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만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한국 사람들은 이 빠른 리듬에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안에는 작은 한국이 있었다
버스 안 분위기는 일본과 많이 달랐습니다.
일본의 대중교통은 대체로 조용한 편입니다.
기사님도 대부분 정중하게 말하고, 승객들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버스 안은 조금 더 생생했습니다.
기사님은 답답하면 바로 표현했고, 승객들도 그 상황에 함께 반응했습니다.
누군가 한마디 하면 옆 사람도 같이 반응하고, 버스 안 공기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버스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멈췄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잠시 뒤 한 남자분이 뛰어와 버스에 탔습니다.
알고 보니 정류장 뒤쪽에 서 있어서 기사님이 처음에는 못 보신 것 같았습니다.
기사님은 그분에게
“다음부터는 정류장 앞에 서 있어야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분은 먼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늦게 나와서 못 봐서…”
그리고 마지막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조금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역시 먼저 설명을 하고 마지막에 죄송하다고 하는구나. 나였으면 아마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것 같은데…’
예전에 한국 사람들과 지내며 느꼈던 말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설명이 조금 변명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내 상황을 조금 이해해 달라”는 마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버스 안에는 한국 사람들의 분위기와 말투, 감정 표현 방식이 모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칠어 보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한국의 정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기사님이었습니다.
말투는 조금 무섭고 거칠게 느껴졌습니다.
운전도 빠르고, 화도 바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남자분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정류장에 정확히 서 있지 않았고, 이미 버스가 지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한국답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무섭게 말하지만,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말은 거칠어도 상황을 보고, 사람을 보고, 한 번쯤 기다려 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일본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욕을 하거나 큰소리를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훨씬 조용하고 정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류장을 지나간 뒤에 다시 멈춰서 기다려 주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규칙대로 그냥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조금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본은 조용하고 질서 있는 대신 규칙이 먼저 오는 경우가 많고,
한국은 조금 거칠고 빠르지만 상황을 봐주는 유연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버스를 탄 시간은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정을 동시에 본 것 같았습니다.
빠르고, 시끄럽고, 조금 무섭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
작은 버스 안에 한국이 축소되어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
예전에는 한국의 이런 분위기가 조금 낯설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너무 빠르고, 말도 크고, 감정 표현도 직접적이어서 가끔은 정신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한국 사람들의 그런 모습 속에는 늘 “사람”이 먼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규칙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면서도 기다려 주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모습들 말입니다.
물론 때로는 거칠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황을 보고, 사람을 보고, 한 번 더 마음을 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버스를 탄 시간은 고작 15분 정도였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속도와 온도를 동시에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